맹장염 수술후기-내 인생드라마에 오래도록 감사의 장면으로 길이 기억될 것 같다
서울 대치동에 거주하고 계신 김광욱 SK 하이닉스 고문(前 SK 하이닉스 부사장)님이 작성해주신 수술 후기입니다.
자랑스러운 최영일 과장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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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저녁 시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기꺼이 수술스케줄을 잡아주신 최영일 과장님, 4박 5일 입원할 동안 알뜰히 챙겨주신 친절했던 간호사분들.... 아마 내 인생드라마에 오래도록 감사의 장면으로 길이 기억될 것 같다."
토요일 저녁, 일찍 저녁을 마치고 TV앞에 앉아 멍때리며 모처럼 주말저녁의 여유로움과 평화를 즐긴다. 그날은 마침 오전에 친구들과 모여 땀흘리며 운동을 했고 평소와 다르게 몸이 가벼웠던 터라 경기 결과는 일방적 압도 그 자체였다. 뜻밖의 결과에 의아스런 표정을 짓던 친구의 표정을 떠올리며 왠지 모를 쾌감에 혼자 미소를 지어본다. 시계를 봤다. 10시가 넘었다. 나른함에 졸음이 밀려오던 그 시간 갑자기 배가 아파오기 시작한다. 통증 지점은 정확히 명치 바로 아래다. 순식간에 시작된 통증은 의외로 강렬했고 그에 맞춰 내 머리속의 분석기능도 속도를 올린다.
명치 아래면 뭐지? 위장? 통증은 마치 송곳으로 위장 내부 여기저기를 찌르는 듯 하다. 혹시 오늘 먹은 것이 잘못된 것은 아닐까? 회나 상한 음식을 먹었는지 기억을 더듬어보지만 오늘은 없다.
언젠가 바다장어(아나고)회를 먹으면 충이 있어 이런 류의 통증이 있다고 들은 기억까지 떠올려 본다. 아침부터 먹은 모든 음식을 소환하여 다시스캔하며 전수조사를 해본다. 그래도 결론은 역시 오늘 먹은 음식과 이 통증과의 인과관계를 설명할수 없다는 것이다. 요즘 내가 체력적으로 너무 무리했나? 푹자고 나면 좋아질거라는 기대를 안고 누워서 잠을 청했다. 다행히 잠이 들었는지 갑자기 통증이 심해져 눈을 뜬 시간은 새벽녘이었다. 그런데 이제 통증의 형태가 사뭇 다르다. 마치 불덩어리 하나가 여기저기 굴러 다니며 위장 내부를 불로 지지는 듯한 치열한 통증이 지속된다. 60 평생을 살면서 이런 류의 통증은 처음이다. 이건 분명 위장에 심각한 뭔가가 발생한게 확실하다. 거실 소파에 쪼그려 누워 통증이 잦아지길 기다려봤지만 쉽게 사그라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불현듯 응급실이 떠오른다. 한번도 가보지 않았던 그곳이었지만 이제껏 경험하지 못한 이 통증이 불가피하게 그 곳을 떠올리게 한 듯 하다.
아침이 되자 서둘러 동네 가까이에 있는 대학병원 응급실을 찾았다. 이미 많은 환자들이 앉아 순번을 기다리며 대기하고 있었다. 함께 간 집사람이 잽싸게 접수를 시작한다. 그런데 접수하시는 직원분이 환자가 누구냐고 묻는다. 접니다!... 왠지 그 질문은 나처럼 서서 걸어 들어오는 환자가 올 곳이 아니다라는 눈빛으로 읽혀진다. 본능적으로 내가 아는 부사,형용사를 모두 동원하여 내 아픔의 심각성을 토로했다. 다행히도 통과가 된 모양이다. 대신 대기 환자가 많아 오래 기다려야 한다고 한다. 이제 병원안이고 무슨 일이 있어도 병원에 와 있으니 아무일 없을 것이라는 안도감은 긴 대기시간도 왠지 극복할 수 있을 것 같은 믿음이 생긴다. 근데 앞에 보이는 모니터의 대기자 명단은 좀처럼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도대체 언제 내 순번이 오는 걸까? 답답했는지 집사람이 달려가 직원께 물어본다. 응급실에 의사선생님이 한 분밖에 계시지 않아 늦어지고 있다고, 그래도 최선을 다하고 계시니 곧 순번이 올거라고...
뉴스에서만 보고듣던 의료사태의 심각성이 이제 나에게도 미칠수 있다는 가능성을 직감한다. 지칠대로 지친 상태에서 내 이름이 불린다. 종종 걸음으로 들어선 진료실에는 많이 지쳐보이는 의사선생님이 무심히 나를 보며 어떻게 왔나고 물으신다. 간밤에 있었던 통증의 양상을 소상히 보고드린다. 침대에 누워보라고 하신다. 배 여기저기를 여러번 눌러보더니 잠시의 주저도 없이 맹장염으로 의심되니 바로 CT를 찍어보라고 하신다. 맹장염일 수도 있다는 사실보다도 밤새 그렇게 통증을 느끼면서 한번도 맹장염일거라는 생각을 해본적이 없었다는 나의 무지함에 내심 당황스러워진다. 한번도 맹장염에 걸려본 적이 없었기에 아마도 그건 당연한 것이었겠지만... 그리고 난 하지말아야 할 질문을 본능적으로 하게 된다. 자신있게 오른쪽 하복부를 가리키며, 선생님, 맹장염은 여기가 아파야 하는것 아닙니까? 저는 지금 명치 바로 아래 여기가 아픕니다. 예전에 맹장은 배꼽과 오른쪽 골반 중간 어디에 있다고 들은 기억을 바탕으로... 예상외 환자의 도발에 의사선생님이 가당치 않다는 표정으로 응시하신다. 피곤한 듯 한숨을 내쉬며 맹장으로 보이니 빨리 검사를 받으라고 힘주어 말씀하신다. 강한 확신에 기가 눌린 상태로 진료실을 나와 간호사의 안내로 TV에서만 보던 응급실 한켠 침대에 누워 피검사와 CT촬영을 하게 되고, 얼마 시간이 지나지 않아 맹장염으로 최종 판정을 받는다. 아! 이게 말로만 듣던 맹장염이구나!....
일반외과 당직의사로 보이는 분이 내려오셨다. 맹장염은 빨리 수술을 받아야 하는데 대학병원에서는 수술하지 않으니 전원을 해야 한다고... 그런데 오늘이 마침 일요일이라 수술가능한 다른 병원을 찾기가 쉽지 않지만 열심히 찾아주겠다고 한다. 전원? 처음 들어보는 말이지만 전후 맥락으로 볼때 병원을 옮겨야 한다는 뜻으로 쉽게 이해가 된다. 여기가 큰 대학병원이고 응급으로 수술을 받지 못하면 복막염으로 대단히 복잡해지고 어려워질 수 있다고 하면서 왜 다른 병원으로 가라고 하는 것인지 환자된 입장에서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작금의 시대적 사회적 상황을 유추해볼 때 더 이상의 저항은 무의미할 것이라는 판단에 쉬 이르게 된다.
전원을 알아봐주겠다고 담당자가 돌아간 후 직감적으로 이 상황은 그냥 기다릴 문제가 아니라 스스로 병원을 찾아봐아 한다는 판단을 하게 된다. 곧바로 핸드폰을 꺼내 검색엔진에 물어본다.
맹장염 일요일 야간수술, 맹장염수술 전국 일등! 대답은 바로 곽병원이었다. 공교롭게도 내가 태어나고 자란 대구에 있는 종합병원이다.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전화를 돌렸고 대구에 가서 수술 가능한 시간이 일요일 저녁임에도 불구하고 흔쾌히 수술을 해주시겠다고 하신다.
가슴이 찡해온다. 다급한 환자만이 느끼는 극한의 안도감, 그런 것이었다.
전원의 고비를 가까스로 넘기고 순항할 것 같은 일정이 서울에서 대구로 내려가는 교통편에서 한번더 좌절을 맞게 된다. 일요일 오후라 하행선 기차는 대충 있을 것이라는 근거없는 기대가 사라지는데는 불과 몇분이 걸리지 않았다. 평소 같으면 일단 서울역에 가서 기다리면 취소표들이 있어 기차를 탈 수 있다는 기대를 할 수도 있지만 현재의 이 상황은 그 방식의 적용에 심각한 문제가 있어 보였다. 곧바로 집사람의 용감한 외침이 귓가를 때린다. 내가 운전할테니 차로 내려가자고...
대구 도착시까지 내 맹장이 잘 버텨주길 기도하며 우린 이미 대구를 향하여 달리고 있었다. 조금씩 열이 오르는 듯 하다. 딱한번 들른 휴게소에서 화장실로 함하는 나의 걸음걸이가 평소 같지 않게 뒤뚱거린다. 맹장이 보내는 다급한 신호처럼 느껴진다. 하늘의 도움인지 그날따라 도로는 차가 하나도 막히지 않았고 예상보다 다소 빠른 세시간 반만에 무사히 곽병원에 도착했다.
응급실에 도착하자마자 수술복으로 갈아입었고 이동식 침대에 누워 수술실로 향한다.
이미 내가 도착할 시간에 맞춰 의사선생님이 만반의 준비를 마치고 기다리고 계신것 같았다.
눈물이 핑돈다! 이어서 마취가 시작된다 하나, 둘, 셋.... 회복실에서 깨어난 후 맹장이 거의 터지기 직전 상황이었다는 얘기를 듣고 안도의 긴 한숨을 쉬어 본다.
어머니께서 입원실로 문병을 오셔서 말씀하신다. 예전에 너희 아버지가 젊으셨을때 맹장염으로 당시 곽외과였던 여기 곽병원에서 수술하셨다고, 그리고 당시 아버지 병수발에 당신께서도 고생 많으셨다는 공치사도 잊지 않으신다. 아버지에 이어 아들까지 부자가 같은 병원에서 맹장염수술을 받게 되다니 이또한 사람 살아가는 큰 인연법의 한 자락으로 해석해도 되는 것인지....
갑자기 시작된 통증에서 수술까지 채 24시간도 걸리지 않은 시간들이 마치 긴박하게 이어지는 한편의 상황극처럼 느껴진디.
일요일 저녁 시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기꺼이 수술스케줄을 잡아주신 곽병원 최영일 과장님,
4박5일 입원할 동안 알뜰히 챙겨주신 친절했던 그 간호사분들.... 아마 내 인생드라마에 오래도록 감사의 장면으로 길이 기억될 것 같다.